점성학, 점성학이란? 개요

점성학이라기보다는 점성술이 더 맞는 말이 아닐까 한다.
점성학, 다시 말해 점성술이란 천체 현상을 관측하여 인간의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다.
혹 어떤 이들은 굳이 미래를 알 필요가 있나?라는 의문을 가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를 알고 싶어 한다.
그런 사람들의 열망으로 시작되었을까?
'하늘에서 이루어지듯 땅에서도 이루어지다' 기독교의 주기도문 중 한 문장이다. 이와 같이 옛날 사람들은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에 영향을 준다고 믿었을 것이다.
칼 구스타프 융은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나는 모든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지금 이 순간의 성질을 함유한다'라고 했다.
동양의 명리학과도 비슷한 개념이리라.


옛 점성술사들은 주로 별자리들과 태양을 비롯한 행성들, 그리고 그 행성들을 둘러싼 위성들의 관계를 갖고 점을 보았다. 
문명이 발달하기 전에는 점성술을 바탕으로 중요한 정치 사안 등을 결정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정식 학문으로 인정되었던 때도 있었지만, 문명이 발달한 이후로는 비과학적이라는 이유로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하늘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언제나 인간에게 경외심의 대상이었고, 이러한 현상과 법칙이 인간을 지배한다고 고대 사람들은 굳게 믿었다. 


오컬트에 따르면 타로, 카발라, 점성술은 하나의 상징체계를 기반으로 나누어졌기 때문에 이 세가지의 관계는 긴밀하다고 한다. 특히 카발라는 성서와 관련이 깊으며 카발라의 상징체계가 성서에서 무더기로 발견되기에 성서를 쓴 인물이 카발리스트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예를 들자면, 앞에서 기술한 기독교의 주기도문 중 한 문장과 점성술의 기본 철학(위에서와 같이 아래에서도 그러하다)이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 

 

점성술이 생각지도 못한 곳에 학문적으로 기여를 했던 경우도 있다. 점성술 그 자체는 비과학적일지라도 관측된 천체의 운행은 과학적 시간표가 되기 때문에, 고대의 사건에 점성술과 관련된 언급이 있을 경우 비교적 정확한 발생시간을 추정해볼 수 있다. 
또한 점술을 보기 위해 천체 관측을 하고 이를 연구하면서 천문학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마치 연금술은 중세 시대의 허황된 믿음에 불과하지만 금을 만들어보려고 갖가지 별 방법들을 시도해본 것이 현대 화학의 밑거름이 된 것과도 같다고 볼 수 있다. 


점성술은 동양권보다 서구권에서 진실로 믿는 사람이 많았는지 네이처에서 이것에 대한 연구를 했었다. 연구 결과 점술가가 운명이나 심리를 정확하게 맞출 확률은 고작 3분의 1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예전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레몽 도메네크는 선수 선발 과정에서 선수들과 자신의 별자리 궁합에 관한 언급을 몇 차례 하기도 했지만 받아들여지진 않았다. 그러나 의외로 프랑스는 점성술의 영향력이 큰 편이다. 
고대 점성술에 기여한 나라는 이집트, 로마, 그리스, 부분적으로는 아랍 정도이다. 특히나 헬레니즘 시대에 이집트가 점성술에 공헌한 바는 엄청 크다.



 

점성술의 역사

고대 사람들은 하늘의 별에 의지해서 운명을 보는 경우가 많았다. 
이때의 점성술은 개인의 운명을 보는 현대의 점성술과는 달리 주로 국가의 흥망성쇠나 한 해 농사의 성공 여부 등 나라의 운명을 점치는 용도로 쓰였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천궁도를 기반으로 한 점성술의 기원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이었다. 
이러한 점성술이 크게 성장하기 시작한 것은 알렉산더 대왕의 헬레니즘 시대 이후다.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국한되어 있던 점성술이 인도, 페르시아, 이집트, 그리스로 전파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학문의 중심이였던 알렉산드리아를 기반으로 점성술은 발전했고, 이전까지 국가의 흥망성쇠를 보는데 주로 사용했던 점술을 개인의 운세를 보는 데까지 확장시켰다.
대부분의 점성학적 체계가 제대로 세워진 것도 이 시기이다.

헬레니즘 세계의 성립 이후 이 지역을 양분하였던 로마 제국과 페르시아에 의해 점성술은 유지되고 발전되었다. 
그러나, 이교 금지령과 밀라노 칙령으로 무장한 기독교의 부흥 이후로 로마를 비롯한 서방 세계에서 점성술은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서방 세계와는 달리 동방 세계에서는 페르시아 이후 오리엔트 세계를 제패한 아랍인들에 의해 그 체제가 유지되었다.
아랍 제국은 당시 동서의 교통로에 있었던 나라로 로마, 그리스의 점성술은 물론, 페르시아와 저 멀리 인도의 점성술까지도 섭렵해서 자신들만의 점성술을 만들었다.
이러한 점성술은 레콩키스타와 십자군 전쟁으로 대표되는 12세기 이후 동방 세계와의 접촉을 통해 다시 서방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서방으로 유입된 점성술이 다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르네상스 이후다. 
이 당시 점성술은 세련된 문화로 유럽에 받아들여졌다. 대부분의 천문학자들도 점성학을 같이 공부하는 경우가 많았다. 
유명한 천문학자중 하나인 요하네스 케플러는 점성술을 '어머니(천문학)를 먹여 살리는 비참한 딸'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갈릴레오 갈릴레이, 아이작 뉴턴에 의해 과학적 사고관이 대두되기 시작하면서 점성술은 점점 미신적이고 비과학적인 것으로 취급되기 시작했다.
학문적인 쇠퇴는 르네상스 시대부터 이미 시작되었는데, 천문학의 영향으로 수학적인 기법을 많이 도입하면서 예언적인 기능을 크게 상실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19세기 말, 심리학이 발달하면서부터 점성학적 체계를 운명이 아닌 심리에 결부시켜서 개인의 정서나 심리를 보는 심리 점성술이 탄생하게 되었다. 
심리 점성술은 원래 의미의 점성술과 분명한 차이점을 보인다. 차이점을 보이는 가장 큰 부분은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 그리고 소행성의 발견이다.
특히 소행성인 세레스와 관련된 부분에서 많은 차이를 보인다. 
고전 점성술은 소행성을 완전히 무시하는 반면 현대 심리 점성술은 소행성도 참고하여 천궁도를 해석한다.

하지만 상당수의 고전 점성술사들은 이러한 현대 심리 점성술을 인정하지 않는다. 
원래 점성술은 운명을 보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심리 점성술은 개인의 운명보다는 심리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심리 점성술의 체계는 고전 점성술의 관점에서 논리적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그 논리적인 부분이 무엇인지는 필자도 잘은 모르겠지만 말이다.

한편, 고대 점성술은 로마, 그리스 시대에 발달한 헬레니즘 점성술과 중세 시대의 중세 점성술, 십자군 전쟁 이후에 재연구가 시작되어 르네상스 시대에 완성된 르네상스 점성술로 나뉜다. 
인도에서는 알렉산더 대왕의 인도 원정 이후로 점성술이 전파되었다고 말했는데, 인도 점성술은 빛의 학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죠티쉬, 혹은 베딕 점성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서양 점성술과 인도 점성술의 차이는 사용하는 황도대가 다르다는 것, 그리고 하우스를 나누는 방법도 다르다고 한다.

한국, 일본,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도 각 나라의 고유한 점성술과 역법을 이용한 사주명리학이 있다. 
당나라 때는 불교와 함께 인도점성술이 유입되어 성행하였고, 원나라 때엔 회회력과 함께 이슬람 점성술이 소개되었다. 
사주명리학, 자미두수, 십팔비성, 칠정사여 등의 다양한 점성술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각자의 이론을 발전시켰다.


사주명리학 또한 서양점성술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명리학의 합형충파해가 서양 점성술의 애스팩트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조선에도 서양 점성술이 유입되었는데, 19세기의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인 남병철은 호로스코프 점성술의 영향을 받아 <성요(星要)>를 저술했다.

현대에 들어 서구 문화가 유입되면서 점성술을 배우는 사람이 늘어났지만, 사실 사람들은 서양의 점술학이라고 하면 별자리 운세로 이해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나 점성학에서 별자리 운세는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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